사람들이 보편적으로 따르는 방식은 대체로 그럴 만한 이유가 있지만, 그것이 현재도 유일한 대안으로 기능하는지 의문이 생기기도 한다.
그러한 의문은 그 방식이 누구를 위해 보편화되었고, 적용하는 과정에서 무엇을 희생하고 있는지에 대한 구조적 의심으로 이어진다.
다수가 공유하는 집단적 신념 역시 특정한 전제 위에서 형성된 것이기에 그러한 의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결국, 이에 대한 질문은 집단의 믿음이 어떤 배경에서 형성되었는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오랜 시간, 인류는 얼마나 많은 사람을 한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는가를 힘의 기준으로 삼아왔다.
이는 부조리한 폭력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집단적 결속이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이다.
인간의 공동체 생활은 생존의 기본 단위였기에, 개인이 공동체에 의존하는 구조 안에서 개인 역시 공동체를 위해 희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집단적 가치관이 형성되었다.
이러한 믿음은 공동체가 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신념으로 확장되었고, 그 흐름에서 개인은 집단의 가치와 목표에 순응하며 공동체에 헌신해야 한다는 집단주의 이념으로 자리 잡았다.
전쟁이 끊이지 않고 불안정했던 시기에 집단주의는 집단의 결속력을 강화하고 빠른 의사결정을 내리게 했기 때문에 개인과 공동체가 살아남기 위한 필수적 기능이었다.
그 과정에서 집단에 대한 믿음 역시 민족 정서에 깊이 뿌리내렸고, 이후에도 개인은 공동체에 기여함으로써 인정과 지지를 받아왔다.
그렇게 집단주의는 상당 기간 순기능으로 작동했다.
시간이 흘러 산업화를 거치면서 시대는 빠르게 변화했고, 현대에 이르러 사회는 이전보다 더욱 복잡한 구조를 형성했다.
그에 따라 과거의 방식으로는 근본적인 문제가 풀리지 않는 경우가 생겨났고, 시대의 흐름은 보다 유연하고 창의적인 해법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집단의 일관된 방향을 요구하는 집단주의는 구조적으로 다양한 해법과 개별성을 수용하기 어려운 형태였다.
일부 소수는 변화의 필요성을 인식했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닿기 어려웠다.
집단이 생존해온 방식에 대한 다수의 믿음은 견고했으며, 또한 그 믿음은 여러 시행착오를 견디는 구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모두가 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집단적 신념은 흔들리지 않았고, 다수가 공유한다는 이유에서 그것은 유일한 정답처럼 여겨졌다.
그리고, 경직된 신념은 현실과 점차 어긋나는 부분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암묵적으로 집단주의는 집단에 대한 믿음을 흔드는 행위에 적대감을 허용한다.
구조에 대한 개인의 의심은 불필요하게 집단을 흔드는 것으로 인식되었기에 질문은 허용되지 않았다.
개인은 집단의 가치에 의심 없이 따라야 한다는 보이지 않는 룰이 생겨났고, 보편적 가치에서 벗어난 태도는 문제로 인식되었다.
개인이 집단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가치를 추구하면 기본적인 룰을 어기는 것처럼 여겨졌고, 이러한 흐름은 보편에 순응하지 않는 소수나 개인에 대한 혐오로 이어졌다.
집단이 공유하는 다수의 믿음은 보이지 않는 압력으로 개인과 소수를 억누르며 규범처럼 인식되었다.
나아가 다수의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 소수의 가치관을 가진 사람을 폄하하거나 조롱하는 문화가 형성되었다.
결과적으로 개인과 소수는 언제나 약자의 위치에서 다수의 앞에 제압당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다수가 소수를 억압하는 구조가 일반화되자 사람들은 소수가 되지 않기 위해 자신의 목소리를 줄이고 대세를 따르거나, 일부는 체념하고 고립되는 것을 선택했다.
그러한 방식은 다수가 소수를 압도하는 것으로 민주주의의 가치를 잊게하고, 소수와 의견을 조율하는 것은 비효율로 취급되었다.
그 과정이 반복되자 현실의 갈등은 해소되지 못한 채 억눌리면서 증폭되었고
결국, 집단 간의 극렬한 대립으로 이어졌다.
오늘날 일부 세대들은 개인의 가치를 추구하는 행위가 도덕적 평가로 이어지는 것에 의문을 품게 되면서, 집단의 신념이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구조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이전부터 한국 사회는 여러 구조적인 문제를 드러내고 있음에도 여전히 개인에게 책임과 희생을 요구하는 이데올로기가 관성처럼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사회는 과거 생존 방식에서 굳어진 신념이 현재 어떤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는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또한, 본질적인 문제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이데올로기의 기능이 현실과 어느 부분에서 괴리가 생기는지 구조적으로 관찰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계속해서 의심해야 한다.
그것은 현재 옳은 방향으로 작동하는가?